Miscellaneous/스크랩2006/08/09 17:21
[주간조선 2005-04-06 09:38]




작은 새, 하늘을 날다

200m 길이의 미니 활주로에 선 꼬마 비행기들은 둥지를 막 떠나려는 어린 새처럼 날개를 떨었다. 시화호 방조제 서쪽 구릉을 타고 넘어온 해풍이 225㎏의 초경량항공기(ULP:Ultra Light Plane)의 동체를 툭툭 치고 간다. “어이, 조심해. 하늘을 난다는 건 만만한 게 아냐.” 바람이 내게 말하는 듯했다.



초경량항공기 비행. 땅덩어리 넓은 나라에서나 즐기는 줄 알았던 ‘간 큰 레저’가 국토는 분단되고 하늘도 군작전공역으로 도배된 이 나라에서 18년 전부터 있어왔다는 사실은 뜻밖이었다. 직접 체험비행에 나서기로 했다고 은근히 자랑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딱 두 가지였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게 있어?” “그거 안전하긴 한 거야?”


‘까치’라는 이름의 국산기 오른쪽 부조종석에 앉은 나는 안전벨트를 조이다가 피식 웃었다. ‘비행기가 떨어지면 이게 필요 있을까?’ 헤드폰셋을 머리에 끼고 에어로피아 항공클럽 김강기(43)씨의 말에 귀기울였다. 그는 서울에서 이곳 화성시 송산면 고포리의 어섬 비행장을 매주 두 번 이상 찾는다는 아마추어 비행광이다.


“조종석 아래 두 개의 페달은 수직꼬리날개(rudder)를 좌우로 움직여 비행기의 방향을 틉니다. 배의 키와 같은 것이죠. 이게 조종간입니다. 당기면 수평꼬리날개(elevator)가 내려가면서 비행기가 상승하고 밀면 하강합니다. 조종간을 좌우로 움직이면 주익의 양쪽 보조날개(aileron)가 오르내리며 비행기가 좌우로 기울게 되죠. 이착륙시에는 내가 조종하지만 하늘에 올라가면 직접 조종간을 움직여볼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내가 함께 잡고 있을 테니 겁먹을 건 없습니다. 자 이제 출발해 볼까요?”


“탕-탕-탕-탕 부르릉~” 점화플러그가 연결된 마스터 스위치와 이그니션 스위치를 차례로 켜고 점화키를 돌리자 투사이클 엔진이 폭발하면서 프로펠러를 돌렸다. 60㎏, 65마력의 공냉식 엔진이 시속 120㎞의 속도를 이끌면서 날개에 양력을 형성하자 비행기는 불과 70m 활주에 솟아버린다. 강한 바람을 비스듬히 안고 기체는 단숨에 150m까지 상승한 다음 송산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꿈결 같은 비행’을 상상했던 나는 굉음과 진동에 얼떨떨했다. 바람이 눈사태처럼 기체를 때렸다. “내 몸이 바람에 날아가는 것 같아요!” 오리처럼 꽥꽥 소리를 질러대자 김강기씨는 내 무릎을 지그시 눌렀다. “처음 타는 분에게는 잔잔한 날이 좋지만 우리는 이 정도 바람을 즐겨요! 자동차로 자갈길을 사정없이 질주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2시간만 가면 중국입니다”


100m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해안선은 생경했다. 마치 다른 혹성의 사막 위를 나는 것 같았다. 페이즐리 문양을 확대해 놓은 듯한 암갈색 갯벌을 지나 서해의 수평선이 와이드 비전으로 펼쳐진다. “2시간만 가면 중국입니다. 지금 이대로 날아가버릴 수도 있지만 국경이 있으니 그건 안되죠.”


수평선 위에 큰 새 두 마리. 사진기자가 탄 오른쪽 비행기가 미국 키트폭스사의 최신 기종이란다. 내가 탄 비행기보다 근사해 보였다. “저건 6000만원짜리입니다. 우리 까치는 4000만원이지만 성능도 별 차이 없고 주익이 길어서 안전성이 더 높아요.” ‘생각보다 비행기가 비싸지는 않구나.’ 1995년 동인산업에서 발주하고 항공우주연구소에서 개발한 ‘까치’는 외국에서도 인정받은 우수한 기종이지만 국내에선 수요가 없어 미국 회사에 판권을 팔았다. 그래서 지금 내가 타고 있는 건 결국 미제다. 하긴 한국의 초경량항공기가 300대라니, 알래스카 한 개 주에만 경비행기가 1만대인 미국이나 호주, 유럽과 비교할 수는 없다.


“자 이제 육지 쪽으로 돌아갑니다. 조종간을 잡고 천천히 당겨보세요.” 왼손으로 조종간을 쥐고 머뭇머뭇 당기자 기체가 기울면서 선회하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갯벌로, 갯벌에서 모래톱으로, 그리고 노란 갈대밭과 푸른 언덕으로 눈에 보이는 사물이 가속도를 붙이며 영사물처럼 돌아간다! 나는 깨달았다. 그동안의 여객기 비행은 비행이 아니라 화물처럼 실려다닌 ‘수송’이었다는 걸….


“초경량 비행이 돈을 쏟아붓는 취미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골프보다 훨씬 저렴해요.” 에어로피아 대표 이규익(40)씨가 말했다. 행글라이더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도 출전했던 그는 1992년부터 초경량항공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하루 5만~7만원… 골프보다 비용 싸


동호인 중 4000만~8000만원(중고품은 2000만원에도 살 수 있다)짜리 초경량항공기를 구입한 사람은 10%도 안 된다. 대개 클럽에서 공동으로 비행기를 구입하므로 자기 비행기가 없어도 연 60만원의 가입비를 내고 항공클럽에 가입하면 하루 5만~7만원에 맘껏 비행기를 탈 수 있다.



물론 조종하려면 면허증을 따야 하는데 그것도 과히 어렵지 않다. 화성에 있는 5개 비행클럽을 비롯해 전국의 30개 클럽에서 20시간(매주 2회씩 2~3개월)만 비행실습을 하면 90% 합격하는 시험이다. 실습교육비는 300만원.


“면허시험이 어렵지 않은 것은 그만큼 초경량항공기의 조종이 쉽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교통안전공단에서 1년에 6차례씩 이론과 실기시험을 치르는데 우리 아들은 겨우 13시간 교육받고 합격했을 정도니까요.” 인천의 제약회사에 다니는 김상천(42)씨는 작년에 면허를 딴 초등학교 6학년 아들 성원이와 동반비행을 즐긴다. 주조종석을 차지하려고 다투거나 비행 후 조종 방식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수가 많다. 이를 테면 ‘내 생각엔 옆바람이 불 때 날개를 기울여서 대응하면 됐는데 아빠는 왜 파워를 껐느냐’는 식이다. “아들과 대화가 없었는데 이제는 친구가 됐죠.”


‘바람이 강하다’며 비행을 포기한 한성환(64)씨는 ULP보다도 작은 ULM(Ultra Light Motor)을 즐겨탄다. 1인승 행글라이더에 엔진을 붙여놓은 듯한 ULM은 아프리카를 무대로 한 영화에 종종 등장한다. “유리창이 없어 춥긴 하지만 조종간 대신 몸을 움직여 방향을 조절하니까 훨씬 다이내믹하다. 날개가 커서 활공비도 높다”고 자랑한다. 활공비(Lift & Drag)는 초경량항공기의 가장 큰 장점으로 엔진이 꺼져도 동력없이 활강할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ULP가 보통 1:10, URM이 1:18이다. 1:10이란 10m 상공에서 동력 없이 100m를 활공한다는 뜻이다. 150m 상공에서 동력이 꺼진다 해도 1.5㎞를 날아다니며 안전한 착륙지를 물색할 수 있다.


여객기가 자동차, 4인승 이상의 경항공기(경비행기의 공식명칭)가 오토바이라면, 1~2인승 초경량항공기는 스쿠터쯤 되겠다. 경항공기만 해도 운항 조건이 까다롭지만 초경량항공기는 안전성인증검사만 받고 서울이나 부산 지방항공청에 등록하면 바로 탈 수 있다. 자동차와 달리 세금도 없다. 대개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가 15분에 4만~5만원짜리 체험비행을 하고 난 후 면허를 따야겠다고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 클럽만 100명의 회원이 있는데 방앗간 주인, 중장비기사에 간호사, 공무원까지 정말 다양해요. 특징이라면 아주 외향적이거나 아주 내성적이지 그 중간의 두루뭉수리한 성격이 없다는 거죠.”


20시간 교육받으면 90% 면허합격


이 작은 비행기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서울에서 환경벤처업체를 운영하는 유원호씨는 “작년에 대천 공주 전주를 거쳐 담양까지 갔다 왔다”고 했다. 다만 전국에 21곳 있는 UFA(초경량 비행공역)를 벗어나려면 서울지방항공청에 1주일 전쯤 플랜을 제출하고 비행승인을 얻어야 한다. “쉽게 승인해주는 편입니다. 출발 전에 오산과 대구의 공군통제소에 통보하고 에어밴드 무전기로 주파수만 맞춰놓으면 운항 도중 공군과 계속 교신할 수 있어서 항로를 벗어날 위험도 없습니다.” 2인승 ULP의 경우 연료를 38리터까지 주입할 수 있다. 화성에서 대구까지 날 수 있는 양이다. 장거리 비행 플랜을 짤 때는 보통 3~5대가 모여 1박2일의 일정을 잡는다. 당일에 되돌아올 수 있지만 모처럼 만난 지방의 초경량항공기 동호인들이 그냥 보내지 않는다고.


허만갑 주간조선 기자(mghu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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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익스피어